파울루 벤투 커리어·전술 정리
오늘 오전 파울루 벤투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김판곤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장이 두 차례 출국하여 얻은 계약이다. 축구 팬 등 여론은 벤투 감독 선임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커리어가 하락세라는 것이 주된 논쟁거리이다. 기록된 커리어만 보면 하락세가 맞다.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이후 명문 클럽에서 활동하지 못했고 그리스, 중국 리그를 경험한 후, 우리나라와 계약했다.
하지만, 정확한 근거 없이 커리어만 가지고 벤투 감독을 완전히 평가할 수는 없다. 슈틸리케의 사례에서 우리는 이미 학습이 되어 있다. 슈틸리케는 가진 것에 비해 부풀려 진 것이 많았다. 반대로 벤투 감독은 언론부터 깎아 내리기 시작했다. 상반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경기를 본 후, 그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감독 자리를 맡았던 올림피아코스와 충칭 리판의 경기를 통해 그의 전술과 경기 스타일을 정리해 보았다.
일단, 그의 프로필을 간단히 정리했다.
파울루 벤투(50세) 국적: 포르투갈
경력
17.12~18.07 충칭 리판
16.08~17.03 올림피아코스
16.05~16.07 크루제이루
10.09~14.09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05.10~09.11 스포르팅 CP
선호 포메이션 4-2-3-1
4-3-3도 간혹 활용
전술 스타일
‘스피드가 가미된 선 굵은 축구’
포르투갈 인접 국가인 스페인의 특유 티키티카와 다르게 선 굵은 축구를 지향한다. 4-2-3-1 중, 2인 투 볼란치는 공격보다 수비에 비중이 있으며 측면으로 뿌려주는 패스를 담당한다. 상황에 따라 센터백도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예전 K리그 스타일인 뻥 축구와 비슷하다 생각하면 큰 반전이 있을 것이다. 강한 전방 압박을 통해 빠른 축구를 구사한다.
소개
주요 커리어만 보자면 역대 어느 감독에 비해 꿇리지 않는다. 유로 2012 4강, 2014 브라질 월드컵 진출의 성과를 이뤄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유로 4강인데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당시 포르투갈은 호날두 의존이 강했으며 현재와 같이 신구 조화없이 노장의 비중이 높았던 팀이었다. 그래서 필자의 기억엔 썩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었다.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는 태도이다. 어쨌든 벤투 감독의 나이는 50세, 지도자로써는 전성기 나이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지도자로써 나이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해외파를 제외한 우리나라 선수들은 유럽식 축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지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늙은 나이에 선수들을 지도하는 데에는 신체적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지금 화두인 벤투 감독의 최근 커리어에 대해서 한번 살펴 보자. 유럽 비주류인 그리스 리그에서 시즌 도중 쫓겨난 일 그리고 중국 리그에서 최근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것을 객관적으로 알아보자. 일단, 그리스 리그에서 시즌 도중 경질된 것은 성적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많은 축구 팬들이 알겠지만, 그리스 리그의 올림피아코스는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처럼 적수가 없다. 리그 1위를 쉽게 할 수 있는 클럽이다. 따라서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려면 적어도 2위까진 내려가야 가능성이 있다.
벤투 감독 재임 시기를 제외한 최근 3년치의 올림피아코스의 승률은 약 82%/70%/90%이다. 벤투 감독 경질 시 승률은 약 70%이었다. 이러한 결과를 보았을 때, 벤투 감독은 자신이 주어진 소임은 달성해 내는 능력은 있는 감독이다. 그리고 중국 리그 경우, 충칭 리판을 맡아 강등권에 접어 들어 경질되었는데 이 부분은 맞는 말이다. 벤투 감독 경질 전, 1승을 제외한 이전에 6연패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충칭 리판이 어떠한 팀인지를 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현재 축구 팬들이 비난하는 부분이 지난 시즌 중위권을 한 팀을 강등권으로 보내버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충칭 리판은 강등권이 원래 맞는 전력이다. 충칭 리판은 중국 2부 리그에서 올라온 지 4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스쿼드는 최하위에 가까운 수준이다. 일례로 트랜스퍼 마켓에 따른 구단가치에 따라 중국 리그의 평균 구단가치는 약 3,000만 유로이다. 충칭 리판은 이에 반도 안되는 약 1,100만 유로이다. 평균치도 안되는 구단을 원래 중위권이었다고 하는 것은 조금 어폐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능력에 비해 환경이 따라주지 않았다고는 못하겠다. 어쨌든 중위권 팀을 강등권으로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한계 상황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능력 탓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보여지는 커리어와 나이를 벗어나 이제 전술에 대해 살펴보겠다. 벤투의 전술은 간단하다. 강한 압박으로 볼을 탈취하여 빠른 역습을 노리고 지공 시에는 측면으로 뿌려주는 롱 패스를 통해 공격 활로를 찾는다. 따라서 측면 윙어는 스피드와 볼 트래핑, 간수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손흥민, 이승우 정도가 이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센터 포워드는 앞서 말한 능력과 더불어 강인한 피지컬이 요구된다. 롱볼 패스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피지컬은 필수 조건이다. 이를 토대로 김신욱, 석현준과 같은 타겟형 포워드가 선호될 것으로 보인다.
3선 자원인 볼란치의 선수들은 순간 스피드, 커버 능력, 수비 공간 이해 능력이 필수적이다. 벤투 감독의 성향상 1~2선 라인의 선수들은 공격 위주이다. 따라서 상대 역습 시에 볼란치가 윙어의 담당 공간을 맡아야 한다. 따라서 커버 능력과 수비 공간 이해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내려서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강한 압박이 그의 특징인 것처럼 상대진영에서 빌드업이 진행 중일 때에는 미드 서드를 넘어서까지 압박에 가담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미드필더 에이스는 기성용인데 기성용 선수가 스피드가 느리기 때문에 과연 이 약점을 어떤 식으로 메울지 궁금하다.
벤투 감독의 수비 전술은 조직적이다. 앞선 공격진의 수비 가담이 어렵기 때문에 남아있는 6명의 선수로 수비를 해내야 한다. 그래서 수비 로테이션 능력이 필요하다. 끊임 없이 빈공간을 찾거나 상대 공격진을 마킹해야 한다. 수비진의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수비 능력이 원채 약한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어떠한 선수가 선발될 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순간 속도와 두뇌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가 중용 받을 것이란 사실이다.
장점이 있는 만큼 약점도 분명하다. 점유율을 중시하는 축구를 구사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에게 쉽게 볼 소유를 내어주는 경향이 짙다. 완급 조절을 효율적으로 하지 못한다면 연달아 상대 공세에 휘둘릴 수 있다. 또한 측면 롱 패스를 위해 전체적으로 공간을 넓게 쓰는 경향이 있다. 경기장을 넓게 쓰게 되면 상대 수비 공간을 넓히는 이점도 있으나 반대로 볼을 빼앗기면 우리가 수비할 범위도 넓어지게 된다. 그래서 빠르고 공간 이해 능력이 있는 수비수가 필요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벤투 감독의 전술과 경기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월드컵에서야 우리가 약팀이기 때문에 역습에 의존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A매치는 아시아 국가와의 경기이다. 아시아 국가와의 경기에서는 우리나라가 지배하는 경기가 많다. 역습과 롱패스 위주의 전술은 상대에게도 기회를 줄 가능성이 많다. 미드필더와 윙어의 조화를 바랬었는데 윙어의 부담이 너무나 크다.
일단 김판곤 위원장이 밝힌 한국 축구 철학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가 당시에 말한 기준에 따르면 능동적인 축구, 볼 소유, 패스 축구가 핵심적이다. 선 굵은 축구를 하는 벤투 감독과는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오늘 벤투 감독 선임에 따른 인터뷰에서도 벤투 감독의 한계에 대해서 말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 있을 때, 수비는 좋았지만 창조적이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충칭에서 공격적인 부분은 상당히 진전돼 있었다. 떠나기 전날도 위원들과 경기를 계속 봤다. 갈 때는 창조적인 면에서 의구심이 있었다.”고 했다.
우려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오늘 김 위원장의 인터뷰를 통해 아시아에서 4년을 보낸 다는 것이 유럽 감독에겐 굉장히 큰 리스크라는 것을 느꼈다. 월드컵이란 무대는 인생에 한 번 오기 힘든 경험이기도 한데 말이다. 여러 논란을 떠나서 김판곤 감독이 벤투 감독에게 가장 큰 매력을 느낀 것은 선진 훈련 프로그램인 것 같다. 그들의 훈련 프로그램에 대해 놀라웠고 선수들에게 적용하여 발전하는 내용에 대해 발언했기 때문이다. 선진 훈련 프로그램은 대표팀은 물론, 한국 축구 전체를 발전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 부분은 긍정적이다.
또한 지속 검증도 약속한 부분이다. 감독 스스로 사퇴하는 경우도 있지만, 협회 또한 경질 권한을 가지고 있다. 기대한 수준보다 미진하다면 고민 없이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도 접촉 가능하고 한국행에 뜻이 있는 감독 자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모든 일에 100%란 없는 것 아닌가? 리스크를 대비하는 것도 감독선임위원장의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