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리그 외국인 선수, 꼭 필요한 것인가? ①
4대 구기 종목 세계 경쟁력 저하
4대 구기 종목이라고 할 수 있는 축구, 야구, 농구, 배구. 이중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종목은 야구뿐이다. 축구는 2002년 월드컵 이후 점차 세계 수준과 멀어지고 있으며 나머지 농구, 배구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농구와 배구는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진출마저 오래된 과거가 되었다. 그러나 야구 또한 야구 월드컵이라고 할 수 있는 WBC 대회에서 2연속 예선 탈락하면서 경쟁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4대 구기 종목의 국제 경쟁력 저하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고민해 보았다. 그 고민은 농구 경기를 보면서 의외로 쉽게 풀렸다. 국내 프로 농구는 외국인 선수를 2명을 쓸 수 있으며 올해는 신장 제한 규정을 두어 각각 2m 이하, 186cm 이하 선수들만 경기장에서 뛸 수 있도록 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인 KCC 이지스도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해 인도네시아로 전지 훈련을 떠났고 그곳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였다. 대회 예선, 토너먼트 경기를 지켜보면서 한 동영상이 오버랩 되었다.
KCC 이지스의 대표 국내 선수는 이정현이다. 국가대표 선수인 이정현은 국내에선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선수가 스킬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게 되었다. 드리블, 슈팅 등 기술 훈련하는 내용이 중심이었는데 내 생각과 달리 이 영상에서는 굉장히 화려한 기술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그 동안 이정현 선수는 슈팅, 패스 위주의 선수였고 화려한 기술을 쓰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영상을 보면서 ‘올 시즌 이정현 선수의 화려한 플레이를 볼 수 있게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 꿈은 얼마 가지 못했다. 대회에서 보인 이정현 선수의 플레이는 예전과 같았다.
반면에, KCC의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은 드리블 돌파와 볼 점유 시간을 오래 가져가면서 대부분의 득점을 책임졌다. 국내 선수들은 외곽에 위치하면서 동료에게 받아 바로 슛을 쏘는 캐치 앤 슛 만을 노렸다. 국내 선수들이 모든 공격을 외곽 슛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나 외곽 슛 비중이 높다. 따라서, 국내 선수들은 스스로 득점 상황을 만드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특히, 농구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그 한계를 나타냈고 귀화 선수인 라틀리프(한국명 라건아)에게 득점 의존이 심했다. 라건아와 함께 외곽 슛이 터지면 쉽게 경기를 운영해 나갔으나 그렇지 않으면 어려운 경기를 이어나갔다. 스코어러의 부족, 외국인 선수 의존 심화 이것들이 농구를 포함한 우리나라 4대 구기 스포츠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고 볼 수 있다.
각 종목의 외국인 선수 제도 신설 배경
외국인 선수 의존도와 문제점
각 프로 리그가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큰 틀에서 팬들을 위한 볼거리 다양화에 근거가 있다. 프로 축구는 1982년 리그 출범부터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했고 국내 선수와 다른 유연성과 기술을 보여주며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프로 농구 또한 1997년 리그 출범부터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했고 힉스, 맥도웰 등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한국 선수들이 보여줄 수 없는 덩크나 엘리웁 등의 화려한 플레이를 팬들에게 선보였다.
현재 최고 인기 리그인 프로 야구는 1981년 출범하여 1998년부터 리그 평준화를 위해 외국인 선수 제도를 만들었다. 당시 국내 선수들은 외국인 타자보다 장타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강타자인 외국인 선수가 들어오면서 그에 대한 결핍을 해소하였다. 프로 배구는 리그 출범 다음 시즌인 2005-2006 시즌에 외국인 선수 제도를 신설했다. 프로 배구의 외국인 선수 제도의 도입 취지는 삼성화재의 독주를 막겠다는 의도가 가장 컸다. 실업 리그 시절 삼성화재의 독주로 인해 배구는 점차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어느 프로 리그든 한 팀이 독주하는 체제는 결과를 정해놓고 하는 것과 같아서 매력이 떨어진다.
리그 평준화와 팬들에게 볼거리를 주겠다는 의도와 달리 현재 외국인 선수 제도는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국내 선수들의 경쟁력을 잃게 만들었다. 프로 야구의 경우, 총 3명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할 수 있고 경기에는 2명의 선수만 나갈 수 있다. 3명의 선수 중, 투수는 2명을 영입할 수 있는데 한 시즌의 성패가 외국인 투수에게서 판가름 난다. 강력한 선발 투수는 9이닝 중 6이닝 이상을 책임지므로 1승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단들도 타자보다는 투수에게 많은 자원을 투자한다. 또한, 2015년 구단이 10개로 늘어나면서 경기 수도 늘어남에 따라 선발 투수에게 가해지는 부담도 늘어났다.
경기 수가 많아지면서 좋은 선발 투수를 육성하는 기간이 줄어들고 곧바로 실전에 투입하게 되면서 경쟁력 없는 경기력과 더불어 기량마저 답보상태에 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류현진을 잇는 차세대 선발 투수가 전무하며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여전히 30줄에 접어는 김광현, 양현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현재 프로 야구는 외국인 선발 투수가 없으면 당장 리그 일정 진행이 차질을 빗는 상황까지 직면했다. 일례로 LG 트윈스는 외국인 선발 투수의 기량이 들쭉날쭉하면서 순위가 2위에서 8위까지 떨어졌다.
프로 축구의 경우, 득점 순위 보드에 외국인 선수가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 선수의 활약 유무에 따라 리그 순위가 요동치고 있고 득점 1위 말컹을 보유한 경남FC는 올해 승격팀임에도 불구하고 2위에 올라있다. 반면, 우리나라 축구는 여전히 대형 스트라이커에 목말라 있고 현재에도 그러한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공격을 외국인 선수에게 의존하고 국내 선수는 볼 배급 역할만 맡고 있어서 특색 있는 선수를 좀처럼 보기 힘들어 졌다. 유소년 리그도 마찬가지인데 승리에 집중하는 나머지 일부 에이스 선수에게 공격을 맡겨 두고 수비에 집중하면서 빠른 압박, 전환을 바탕으로 하는 현대 축구를 따라 잡지 못하고 있다. 현재 대표팀에서 수비수를 마음대로 제칠 수 있는 선수도 손흥민에 한정되어있다.
프로 농구도 다르지 않다. 전체 득점 50% 정도를 외국인 선수가 이를 부담하고 있다. 국내 선수들은 외국인 선수의 수비 부담을 줄여주고 좋은 패스를 넣어주며 외곽 슛을 통해 수비 분산을 유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래서 국제 대회만 나가면 더 높은 신장과 개인 기량이 뛰어난 국가에게 속수 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키가 크고 개인 능력이 좋은 외국인 선수를 도입하여 국제 경쟁력을 키운다는 주장도 있으나 훈련 때 보고 느끼는 것 외에도 실제 경기에서 그 배움을 써먹을 수 있어야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농구는 90년대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오히려 90년대에는 세계 선수권과 올림픽도 진출하였으니 기량이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 바른 설명일 것이다.
4대 구기 종목 중, 외국인 의존도가 가장 높은 종목이 배구일 것이다. 일례로 2013년 창단한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는 세계적인 센터 시몬을 2014년 영입하면서 리그 순위를 6위에서 2위까지 끌어 올렸고 최종 우승 타이틀까지 거머쥔다. 그러나 프로배구연맹이 2016-2017 시즌 외국인 선수를 자유계약제도에서 트라이 아웃 제도로 바꾸자 시몬과 재계약을 하지 못했고 성적이 최하위로 떨어지는 웃지 못할 기록을 달성한다. 그 만큼 외국인 선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상대 수비들이 외국인 선수 방어에 몰두하면서 국내 선수들의 견제가 줄어들었는데 이 배경으로 국내선수는 더 수월하게 공격에 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표팀에 발탁되어 국제 경기에 임하면 우월한 신장에서 나오는 공격과 수비에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수준이 되었다. 또한 한 수 아래라고 평가하던 일본에게도 밀리면서 아시아에서는 점차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력 측면과 외에도 금전적 문제도 크다. 외국인 선수의 의존도가 커지면서 실력있는 국내 선수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자유계약인 축구와 야구를 배제하고 연봉이 한정된 농구와 배구는 국내 선수의 몸값이 외국인 선수를 웃돌고 있다. 그 배경으로 기량 좋은 소속 국내 선수를 지키고 나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구단 간의 쩐의 전쟁이 본격화 되면서 국내 선수들의 연봉이 오르고 있다. 일부 팬들은 외국인 선수보다 못한 선수들이 더 많은 돈을 받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국내 선수 연봉 거품은 리그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안 그래도 야구를 제외한 프로 리그가 팬들에게서 외면받고 있는데 지출의 증가는 구단 운영에 부담을 증가시킨다. 또한, 팬 감소는 곧 광고 수익 감소와 연결되며 현재 프로리그는 입장료로 대부분의 지출을 부담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광고 수익 감소는 구단 운영에 큰 영향을 끼친다.
외국인 선수 자유 계약 제도를 채택한 축구와 야구는 다른 문제가 있다. 먼저 급속도로 팬 수가 줄고 있는 프로 축구는 높은 외국인 선수 몸값으로 인해 국내 선수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이로 인해 가까운 중국, 일본 프로 리그로 이적하는 선수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준급 선수들의 해외 이탈은 국내 리그 수준 저하 및 스타 플레이어 생산에 큰 차질을 빗고 있으며 프로축구연맹도 자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또한, 리그 인기 감소로 스폰서 기업의 투자 축소도 리그 질적 하락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여러모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프로야구는 외국인 선수의 몸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부분이 문제이다. 야구라는 종목이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비인기 종목이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 수급에 문제가 있고 우리나라의 야구 수준이 세계적 반열에 오르면서 검증 받지 못한 외국인 선수를 쓰기 어려워 졌다. 그래서 최대 시장인 미국 의존도가 심하다. 자원에 제한이 있는 국내 프로 구단이 미국까지 가서 선수 데이터를 만드는데 한계가 있고 일부 에이전시가 추천하는 선수들에 대해 여러 국내 구단들의 영입 경쟁이 붙으면서 외국인 선수 몸값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2019년 시즌부터 용병 몸값 제한(한 명 당 100만 달러) 제도가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