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K리그 리뷰 25R: FC서울 - 강원FC
말복에 지친 선수들
여름 더위의 끝자락인 말복에 서울과 강원이 다시 만났다.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움직임이 둔했고, 빠른 템포의 경기가 아니어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지루한 면이 있었다. 이번 25R 경기 중, 가장 재밌는 경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더위 때문에 기대만큼의 경기력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한창 물오른 강원의 기세와 여유는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경기였고, FC서울도 지난 대구FC의 승리 기운을 이어가면서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친 부분은 긍정적이었다. 골만 터졌어도,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더위를 식히는 선물이 되었을텐데 양 팀의 골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용병술 대결
병수볼 VS 용수볼. K리그의 핫한 전술가로 떠오른 강원FC의 김병수 감독은 K리그스러운 단조로운 플레이에서 벗어나 포지션 파괴적인 용병술을 통해 '병수볼'을 탄생시켰다. 핵심은 센터백에 풀백 선수를 세워 공격적 운영을 가져가는 것이다. 리그 초중반까지는 신광훈을 스토퍼로 돌려 병수볼의 시작을 알리더니 최근에는 아시아쿼터로 풀백 나카자토가 영입하면서 풀백인 윤석영 역시 스토퍼로 돌리는 진보적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최용수 감독도 지난 대구FC 전에서 중앙 미드필더인 정현철을 센터백으로 기용하는 파격적 선택을 보여주었다. 1회성 로테이션일줄 알았는데 강원과의 경기에서도 정현철을 센터백으로 기용해 과거 쓸놈쓸(쓸 놈만 쓴다)의 대표적 아이콘이었던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정현철이 들어와서 극적인 효과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 센터백보다 정확한 패스와 킥력으로 오스마르에게 부담된 후방 빌드업을 같이 수행할 수 있게 하였다. 그전까지 실점이 상당했던것에 비해 정현철이 센터백으로 들어오면서 안정감이 살아난 부분도 있다. 묘수가 여러모로 쓸모가 있게 되었다.
더불어, 고요한보다 볼 배급에 더 관여하는 스타일의 정원진이 들어오면서, 미드필드에서 볼 소유 시간을 늘릴 수 있게 되었다. 리그 종반으로 가는 와중에 떨어지는 체력을 최용수 감독이 이런 용병술을 통해 극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9월이 되면, 주세종과 이명주가 돌아오기 때문에 고요한을 윙백으로 돌려 측면 공격력을 살리는 공격 패턴 다양화를 할 수 있다. 한 달 버티기에 돌입한 서울이 최용수 감독의 좋은 지략으로 체력 저하를 맞은 위기에서 한 숨 돌린 것 같다.
치열했던 미드필드 공방전
점유율을 많이 가져가는 축구를 하는 강원FC의 특성상 미드필드 싸움이 가장 중요했다. FC서울도 이를 알고 수비 시, 완전히 물러서지 않고 전체 수비 라인을 당기면서 강원FC가 미드필더에서 오랜 시간 볼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효과적이었고, 윙어로 나선 조재완과 강지훈이 제때 볼을 배급받지 못해 이전 경기와 같은 돌파와 크로스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강원의 공격력이 상당히 낮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투톱까지 수비 가담에 참여한 FC서울은 역습 전개를 빠르게 할 수 없어 자신의 공격력도 줄인 제로섬 게임이 돼버렸다.
제리치를 포기하고 선택한 정조국
지난 시즌 센터 포워드 1옵션은 제리치였다. 큰 키를 활용해 24골을 넣어 말컹(26골)에 이어 리그 득점 2위에 오른 선수이다. 그러나 올 시즌을 맞이한 김병수 감독은 과감히 제리치를 벤치에 앉히고 베테랑 정조국을 1옵션으로 삼아 전술 변화를 가져갔다.
시즌 초반에는 떨어진 공격력으로 인해 주춤하긴 했으나 자신의 철학이 담긴 전술이 서서히 올라오면서 어느새 4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제리치 대신 왜 정조국을 선택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이날 미드필드 싸움이 치열했고, 변칙 전술로 나선 강원FC도 좀처럼 전진패스를 하기 쉽지않았다. 그래서 정조국이 센터 라인까지 내려오면서 볼 배급에 관여했고, 일정 부분 강원의 점유율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위 장면을 보면 정조국이 밑으로 볼을 받으러 내려와 반대 전환을 해주면서 서울의 약점을 공략하는 동시에 병수볼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정조국이 수행했다. 박스 근처에서 받아먹는 볼을 좋아하는 제리치는 이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36살의 공격수가 여전히 클라스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득점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지만 넓은 활동량과 경기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장점이 그를 병수볼의 원톱 스트라이커로 낙점하게끔 했다. 전 FC서울의 선수가 좋은 활약을 하고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동국 선수처럼 멋진 활약을 오래 보여주었으면 한다.
병수볼은 진화중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움직임, 예측 불가능한 패스에 이은 정확도 있는 슈팅, 한번의 공격 패턴 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축구가 강원FC의 축구이다.
FC서울은 전체 라인을 촘촘히 세우고 강원FC를 상대했다. 볼을 넣어줄 선택지가 줄어든 강원은 자기 진영에서 백패스와 횡패스를 돌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포기는 없었다. 한껏 올라온 FC서울의 뒷공간을 보기 좋게 패스 플레이로 이겨내며, 감탄사를 불러일으켰다.
위 장면은 3번의 패스로 정조국에게 1:1 찬스를 만들어주는 상황이다. 1년 전만 해도 제리치에게 의존해 공격을 풀어가던 모습을 사라지고, 패스 플레이를 통해 찬스를 만들어 낸다.
또한, FC서울의 약점은 미드필더를 3명 밖에 두지 않기 때문에 측면 공간이 약하다. 이를 알고 서울의 5백 라인에 4명을 붙여놓고 풀백의 오버패핑 등 2선에서 방향 전환을 통해 서울의 수비 라인을 흔들었던 강원이었다.
김병수 감독도 선수들이 계속해서 종패스만 하려하자 테크니컬 에어리어까지 나와서 볼을 크게 돌리라고 지시했다. 3번 정도 FC서울의 수비 라인이 크게 흔들렸지만, 좌우 윙어와 풀백이 더위에 따른 체력 문제인지 돌파가 쉽지 않았다. 측면 활로가 막히자 슈팅까지 이어가기 힘들었다. 총 6번의 슈팅, 1번의 유효 슈팅 밖에 기록하지 못한 강원이었다.
페시치 복귀
서울의 공격 반이상을 차지했던 페시치가 드디어 복귀했다. 후반 74분 박동진을 대신해 들어온 페시치는 몇차례의 볼 터치와 돌파를 보여주었으나 완전한 경기력은 아니었다. 다시 경기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로또성 득점인 박동진과 프리키커 역할에 치중된 박주영으로는 남은 시즌에서 득점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한 방 능력이 있는 페시치가 들어오면서 공격력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인 플레이 상황에서 제공권까지 높일 수 있는 자원이다. 182cm 박주영, 박동진보다 훨씬 큰 190cm의 페시치는 크로스 상황에서도 이점이 있다.
페시치의 빠른 경기력 회복을 기도하며, 다음 경기는 오후 7시, 17일(토) 성남FC와의 원정경기입니다.
승점을 챙길 수 있는 몇 안되는 경기이므로 꼭 승점 3점을 챙겼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