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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축구

[한국 - 조지아] 2분만 보면 이해되는 벤투의 3백 고집

벤투 3백, 당신이 원하는 답이 여기 있습니다

6월 호주전 이후 다시 3백 카드를 꺼내든 벤투 감독. 경기력은 지난번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후방 빌드업은 불안했고, 상대 진영으로 볼을 운반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손흥민은 전반에 볼을 잡을 기회가 없었고, 그의 파트너인 이정협은 그림자와 같이 경기장에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럼에도 벤투 감독이 3백을 꾸준히 실험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다.

2022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 나오는 팀을 상대로 3백을 활용하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1년에 몇 번 없는 평가전에서 시간 낭비를 하는 셈이다. 아시아에서 한국과 대등한 경기력을 낼 수 있는 팀은 몇 국가 없다. 그래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은 밀집 수비로 나올 것이 분명한데, 벤투 감독은 3백으로 밀집 수비를 뚫어보려는 것 같다.

3명의 센터백을 두어 최소한의 수비 자원을 갖추어 놓고, 나머지는 공격에 올인하여 득점에 집중하겠다는 의중으로 보인다. 현재 대표팀 센터백 구성을 보면, 비교적 패싱 능력을 갖춘 선수들을 선발했다. 상대 역습 저지 후, 정확한 패스를 통해 다시 공격에 집중하는 구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론만 보면, 납득이 가는 전술이다. 밀집 수비를 하는 아시아 국가는 수비 시 공격수가 센터 라인을 넘어올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때 3백으로 후방을 단단하게 해놓고, 공격에 힘을 쏟아 반코트 경기로 경기 자체를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획에 비해 전술을 이행할 선수들의 적응 기간이 부족하다.

가능성을 염두에 둔 라인업

구성윤과 이강인이 데뷔 전을 가졌다. 골키퍼 포지션인 구성윤은 1, 2옵션인 김승규와 조현우의 활약에 선발 출전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김승규와 조현우가 6월 A매치에서 불안한 모습을 노출, 그리고 킥 미스도 있어서 벤투 감독의 신뢰가 약간 내려갔을 수 있다. 그런 차에 구성윤에게 기회를 주고 테스트를 한 것일 수도 있다.

킥 정확도는 김승규, 조현우에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조현우보다는 정확한 모습을 보였다. 반응 속도나 판단 능력은 약간 달렸지만, 전체적인 능력은 주전으로 뛰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골키퍼 포지션은 축복이다. 끊이지 않고, 좋은 골키퍼가 배출되고 있다.

구성윤과 함께 첫 A매치를 가진 이강인은 반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공격에서 시원하게 볼을 뿌려주고, 프리킥에서 정확한 킥을 보여준 것은 기대한 바와 같았다. 그러나 수비에서는 아직 발전이 필요해 보였다.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백승호에게 많은 지원이 있어야 했는데 이강인이 제때 도와주지 못하면서 백승호 좌우 측 공간이 많이 열려 위기 상황을 초래했다.

수비 부분은 향상시키면 된다. 3년 후 성장한 이강인이 월드컵에서 활약할 것을 기대한다.

조지아 전에서 준 파격은 황희찬을 라이트 윙백으로 둔 것이다. 윙백을 윙어처럼 쓰는 벤투 감독이기 때문에, 저돌적인 황희찬을 윙백으로 기용해 본 것 같다. 결과적으로 밀집 수비를 하지 않는 팀을 상대할 때에 황희찬을 윙백으로 쓰는 것은 도박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오버래핑 이후 복귀 속도가 느리고, 수비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을 간혹 보였다.

최근 좋은 활약을 보이는 황희찬은 소속팀에서 공격수로 나서고 있다. 수비 범위가 적은 포지션에서 수비 범위가 넓은 윙백을 맡았던 것에 어색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수비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한 조지아는 의외로 초반부터 강한 전방 압박을 통해 한국을 괴롭혔고, 이번 평가전을 조지아의 경기로 만들었다. 피파 랭킹이 비록 94위임에도 유럽 팀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군 선수들을 100% 활용한 것도 아니었다. 주장 칸카바와 에이스 그빌리아를 빼고 경기를 치렀는데도 한국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였다. 유럽 중하위권 팀이 이 정도의 경기력을 보였는데, 유럽 축구의 성장세는 여전히 한국보다 빠른 것 같다.

간격, 고질적 한국 축구의 문제

조지에게 고전한 이유는 한국 선수들이 볼을 가졌을 경우에 주변 선수들의 지원이 적었던 것이다. 측면으로 볼을 잘 운반해도 파이널 서드로 볼을 넣어줄 공간이 없었다. 1, 2선 선수들이 간격을 좁혀 패스 길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수동적으로 제자리에서 볼을 받으려고 해 공격 작업에 애를 먹었다.

위 장면을 봐도 황희찬의 선택지는 이강인을 향한 백패스밖에 없다. 그리고 압박을 받는 이강인 역시 볼을 뒤로 돌릴 수밖에 없다. 전진성이 확보되지 않는 움직임과 선수 간격으로 인해 스스로 경기를 어렵게 했다.

이 같은 문제는 초기 빌드업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견제를 덜 받는 센터백 주위에서 볼을 돌리는 것은 아주 쉬웠지만, 그 앞선 선수들은 견제를 받으면서 전진 패스를 하기 아주 어려웠다. 따라서, 윙백도 초기 빌드업에 가담하고 최전방 공격수 역시 상황에 따라 볼 운반에 도움을 주었어야 했다.

윙백은 올라가고, 최전방 공격수는 전방에 위치하면서 초기 빌드업도 쉽지 않았다. 권창훈과 이강인이 탈압박 능력을 앞세워 전진성을 확보하려 했으나 드리블이 길어져 오히려 위험지역에서 상대 역습 기회를 주는 상황을 자주 보였다.

4백에 비해 3백은 센터백을 제외하고 모든 선수들이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야 포메이션이 주는 이점을 활용할 수 있다. 대표팀에서 완전히 구현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경기 후 비행으로 체력적으로도 떨어져 있었고, 조지아가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어려운 경기를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월드컵 2차 예선에서 초반에 골을 많이 넣은 후 후반쯤에 3백을 실험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맞불을 놓는 팀에게 설익은 벤투 호의 3백은 두들겨 맞기 좋은 선택이었다.

간격 문제는 K리그에서도 다르지 않다. 전북, 울산이 강한 팀이긴 하나 간격은 역시 넓어 유기적인 모습을 자주 생산하지는 못한다. 선 굵은 축구를 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습성이 아직 남아있는 듯하다.

최근 트렌드를 따라가려면 변화가 필요한데 변화의 속도가 너무 더딘 것 같다. 결국, 간격을 좁히지 못함으로써 경기 템포도 느려지게 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템포가 빨라져야 경기가 재밌어진다. 내리막을 걷던 K리그의 반등으로 좋은 분위기가 잡힌 것은 맞지만, 프로 야구를 보면 답이 나온다.

성장이 없으면 관중 축소는 시간문제이다. 전북과 울산 같은 K리그 리딩 클럽들이 먼저 국내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아야 다이내믹한 축구가 K리그에서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3백의 주요 공격 루트

호주 전의 3백과 이번 평가전의 주요 공격 루트는 측면이었다. 측면에서 기회를 찾았던 벤투 감독이다. 특히, 주력이 괜찮은 손흥민과 권창훈의 연계 플레이는 앞으로 한국이 가져가야 할 주요 공격 루트임을 재확인했다.

첫 번째 사진은 권창훈이 측면으로 빠져 손흥민이 수비 뒤 공간을 침투할 공간을 만들어주고, 후방에서 김진수는 침투 패스를 넣어주어 손흥민에게 크로스 또는 돌파 상황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맡았다.

경기장의 잔디 상태가 좋지 않아 정확한 패스가 몇 번 있지는 않았으나 손흥민의 주력과 드리블을 활용하는 데에는 좋은 전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 번째 상황은 손흥민과 권창훈이 역할을 바꾸어 손흥민이 수비를 측면으로 끌어주고 권창훈이 상대 박스로 침투하면서 득점 찬스를 만드는 패턴이었다. 그동안 권창훈의 자리에서 나왔던 이재성과 황인범에 비해 권창훈이 가지는 이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공간 활용이 뛰어나고 슈팅력을 갖고 있어 득점을 기대할 수도 있는 선수이다.

앞선 두 선수도 좋은 선수이나 벤투 감독 전술에서는 권창훈이 다양한 상황을 더 만든다고 생각한다.

믿음직한 1군

후반 시작과 함께 황의조, 정우영, 김영권이 들어오자 전반과 다르게 한국의 플레이에 안정감이 실렸다. 역시, 1군의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속팀에서 꾸준히 기회를 받고 있는 정우영이 백승호 자리로 들어온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수비에서 중심이 잡히니 조지아도 전반처럼 한국의 수비를 흔들어 대지 못했다. 이정협 대신 들어온 황의조도 최근 골 감각을 살려 2골을 집어넣으면서, 손흥민의 파트너는 자신이라는 것을 다시 증명했다.

이번 조지아와의 평가전은 3백 불안함과 1군의 안정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경기였다. 조지아보다 약한 투르크메니스탄을 상대하는데 좋은 학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의 컨디션이 아직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남은 4일 동안 회복해서 2022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투르크메니스탄 경기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보였으면 좋겠다.